[전국인사이드①] 경기도 지식산업센터 사기분양, 서민들의 꿈을 삼키다

지식산업센터=중소기업 복합시설


원천적으로 3자 임대는 불가능

“임대 가능” 내세우며 사기분양

사기분양 알았을 땐 이미 늦어

[천지일보 경기=이성애 기자] 분양대행사 광고 문구. ⓒ천지일보 2025.10.15.
 
 

[천지일보 경기=이성애 기자] “분양 대행사는 ‘80% 대출이 가능하다, 임대만 놓으면 안정적인 수익이 나온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계약이 끝나자 은행에서는 대출이 불가능하다고 했습니다. 잔금을 내지 못해 제 집은 결국 경매로 넘어갔습니다.” 피해자 A씨의 목소리는 절망에 젖어 있었다. 그의 말은 한 개인의 불행담이 아니라 경기도 곳곳에서 반복되는 지식산업센터(지산) 사기분양의 전형적 서사다.



 [천지일보 경기=이성애 기자]  강남 오션센터럴비즈 지식산업센터 분양하우스. ⓒ천지일보 2025.10.14.

◆위장사업자 등록증·허위 대출 약속에 무너진 삶


지산은 본래 제조업·지식기반 기업을 위한 업무·생산 복합시설이다. 중소기업이 저렴한 비용으로 입주해 성장의 발판을 마련하도록 각종 세제·금융 혜택이 설계됐다. 그러나 최근 수년 사이 이 제도는 투자상품화의 유혹에 휩쓸렸다. “월세 160만원 보장” “총분양가 10%로 계약 가능” “중도금 후 부가세 환급” 같은 문구가 현장에 난무했고 일부 대행·브로커 조직은 ‘임대 가능’을 전면에 내세우며 노후자금·퇴직금·전세보증금을 끌어들였다. 문제는 이 약속의 상당 부분이 사실과 제도 사이의 ‘틈’에 기대 서 있다는 점이다. 실제 임대가 가능한지, 입주자격을 충족하는지, 대출이 가능한지, 부가세 환급의 요건과 추징 위험은 무엇인지 충분히 안내받지 못한 채 서민들은 계약금과 중도금을 쏟아 넣었다. 뒤늦게 대출이 막히고 입주가 제한되며 임대가 불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땐 이미 손 쓸 여지가 적었다.



 [천지일보 경기=이성애 기자] 강남 오션센터럴비즈 지식산업센터 분양하우스. ⓒ천지일보 2025.10.14.

◆쏟아지는 피해, 무너지는 서민의 꿈


피해자 모임에 따르면 상당수 계약자들은 “사업자등록만 있으면 분양이 가능하다”는 안내를 반복적으로 들었다고 말한다. 이 말은 겉보기엔 합리적으로 들리지만 실제론 ‘임대업 목적의 분양 제한’ ‘입주대상 업종 제한’ ‘실사용 요건’ 등 복잡한 규정의 핵심을 흐린다. B씨는 “홍보 자료와 현장 설명만 보면 오피스텔처럼 임대가 가능한 줄 알았다”며 “지자체가 이런 광고를 사전에 걸렀다면 애초에 계약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피해 양상은 단순한 계약금 손실을 넘어선다. 일부는 계약금·중도금을 마련하려 신용대출과 카드론을 끌어다 썼고 준공이 다가오자 ‘잔금+기존 대출’의 이중 부담에 휘청거렸다. 대출이 안 되면서 예정했던 자금계획이 무너졌고 보유 아파트가 경매에 넘어간 사례도 나왔다. 노후자금 전부를 투입했다가 재산을 잃고 자녀 학자금과 생활비까지 깎아 쓰다 채무불이행 직전까지 내몰린 이들도 있다. 피해자 C씨는 “계약 당시엔 ‘준공 즉시 임대 가능’이라길래 수익으로 이자 상환이 된다고 믿었다”며 “하지만 실제론 임대 자체가 제한되고 공실도 많다더라. 잔금이 다가와 밤마다 잠을 못 잔다”고 했다.


전국 지산 피해자 비상대책위 이종선 위원장은 사안을 키운 관행을 비판했다. 이 위원장은 “지금 이 문제는 개별 분양 현장의 미스커뮤니케이션 차원이 아니다”며 “시행·대행·중개가 ‘성과보수-빠른 완판’ 구조에 갇혀 위험 정보를 충분히 고지하지 않는 관행이 굳어진 결과다. 수천명이 같은 유형의 피해를 겪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말은 ‘피해의 구조성’을 지적한 것이다. 단일 현장의 문제라면 사후 정리로 봉합이 가능하지만 동일한 말과 동일한 스크립트가 여러 현장에서 반복되는 현실은 제도·감독의 사각지대를 드러낸다.


피해자들의 자료를 보면 홍보 전단과 온라인 배너, 모델하우스 PT 슬라이드에는 ‘임대수익 확보’ ‘대출 70~90% 가능(금융권 심사 전제)’ ‘부가세 환급’ ‘취득세·부가세 환불’ ‘10% 계약 가능’ 같은 문구가 빠짐없이 등장한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단서, 예컨대 ‘임대가능은 특정 업종·입주요건 충족 시’ ‘부가세 환급 후 실사용 불충족 시 추징 가능’ ‘대출은 개인소득·신용·물건가치·용도에 따라 거절될 수 있음’ 같은 리스크는 설명의 말미에 작게 처리되거나 아예 구두상으로만 언급되는 경우가 많았다. 피해자 A씨는 “브로커가 ‘서류만 준비하면 된다’고 해서 맡겼는데 나중에 보니 사업자등록증도 엉터리였다. 타인 명의 서류가 오갔다는 얘기를 듣고 경악했다”고 말했다.



평택시청 기업지원과 발송된 문서. (제공: 제보자) ⓒ천지일보 2025.10.14.

◆분양업체 “가능성만 안내했다”


업계는 “우리는 제도상 가능한 범위를 설명했다”고 항변한다. 한 대행사 관계자는 “분양가 10%로 계약 후 중도금 대출, 부가세 환급은 제도적으로 존재하는 절차”라며 “대출 70~80% 가능 문구도 은행 심사를 전제로 한 것이지 보장은 아니다”고 말했다. 오션지식산업센터 특별분양 담당자 이민수 과장은 현장에서 “연금만으로 노후를 준비하는 것은 불안정하니 분양받아 투자하면 월세 수입이 최소 월 160만원이 나온다” “총 분양가의 10%만 있으면 계약 가능, 중도금 치르면 부가세 환급” “20평 4억대면 70% 융자 가능”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그는 “주변 시세를 예시로 든 것이며 구체 대출 여부는 금융권 심사사항”이라고 부연했다.


그러나 피해자·전문가들은 이 같은 ‘가능성 안내’가 사실상 ‘현실적 보장’으로 전달되도록 설계돼 있다고 지적한다. 상담 첫머리에서 ‘최소 월세 160만원’ ‘즉시 임대’ 같은 강한 메시지를 주입하고 경계 문구는 뒷부분에 낮은 볼륨으로 배치해 소비자의 위험인식을 희석시키는 전형적 세일즈 기법이라는 것이다. 김현수 한국부동산정책연구원 소장은 “지산 분양에선 시행·대행·중개가 한 팀처럼 움직이며 심리적 안전망을 만들어 준다. 이른바 ‘채증(彩證) 마케팅’—다양한 자료·수치·전문가 코멘트로 신뢰를 과다증폭—이 동원된다. 투자자 입장에선 ‘다들 괜찮다는데’라는 동조 편향이 작동해 경고 신호를 무시하게 된다”고 말했다.


업계는 또 “타인 명의 사업자등록증 문제는 브로커 개인의 일탈”이라고 선을 긋지만 피해자 진술은 다르다. “대행사 직원이 브로커를 소개했고 같은 사무실에서 서류를 받았다” “분양팀 명함을 달고 다니며 계약·대출·세무를 한꺼번에 안내했다”는 식의 증언이 여럿이다. 이 위원장은 “누군가의 일탈로 축소하면 구조 개선이 지연된다. 공급자 측에 ‘위법·기망행위 발생 시 연대책임’ 원칙을 명확히 해야 관행이 고쳐진다”고 강조했다.


부가세 환급·절세 메시지도 위험하다. 실제 부가가치세 환급은 요건 충족 시 가능하지만 실사용·과세표준·용도변경 등 사후 요건 미충족 시 추징·가산세 부담으로 돌아올 수 있다. 그럼에도 ‘환급’만 전면에 내걸리면 투자자는 유동성 착시를 일으킨다. 이 소장은 “환급은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이미 낸 세금을 돌려받는 절차’다. 리파이낸싱·잔금 대출과 얽히면 현금흐름이 꼬일 수 있어 사전에 회계·세무·법률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업자등록증이 분양자의 이름과 다름. (제공: 제보자) ⓒ천지일보 2025.10.14.

◆지자체·관계기관의 관리 부실


경기도청은 2024년 초 위장 사업자등록 전수조사를 예고했고 일부 시·군은 허위·과장 광고 단속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피해 현장에선 “사후 단속”의 한계를 지적한다. 허위·과장 광고는 분양 초기, 즉 계약금을 끌어들이는 단계에서 집중적으로 이뤄지는데 행정의 개입은 민원이 폭발한 뒤 늑장 대응으로 이어지기 쉽다. 세무서는 “사업자등록은 형식 요건 심사”라며 위장 등록을 사실상 걸러내지 못하고 국세청도 “위반 시 고발·과태료” 원칙을 밝히지만 실적은 미미하다는 것이 피해자들의 주장이다.


지방의 한 사건처럼 2023년 전남 나주에서는 지산 기숙사 불법 분양으로 건설사 대표가 구속된 일도 있었다. 이 사례는 ‘사건 발생→일부 처벌→다시 반복’의 악순환을 보여준다. 제도 설계상 공공목적과 혜택이 부여된 시설임에도 인허가 단계의 적정성 심사와 사후 관리의 전선에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이다. 김광민 경기도의회 의원(변호사)은 “지산은 사실상 아파트 분양사업이 진화한 형태로 지자체가 경쟁적으로 허가를 남발하면 수요·공급의 균형이 깨진다”며 “총량 관리와 입주 적정성 검토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종선 비대위 위원장은 “서민들이 믿은 건 ‘정부가 허가한 상품이니 안전하겠지’라는 신뢰였다. 그 신뢰가 무너졌다. 더 늦기 전에 특별법과 구제기금, 인허가 총량·사전심사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피해자 C씨의 호소는 간명했다. “우리 같은 서민은 어디에도 기댈 곳이 없습니다. 더 이상 같은 피해가 나오지 않게 해 주세요.”



 [천지일보 경기=이성애 기자] 강남 오션센터럴비즈 지식산업센터 분양하우스. ⓒ천지일보 2025.10.14.


출처 : 천지일보(https://www.newscj.com)